다인 이야기/소소한 일상

20110311 -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네보 2011. 3. 11. 12:35

몇군데 이사짐센터 직원의 견적을 받아보고 어제 18만엔에 22일 이사로 결정하고
오늘 짐쌀 박스를 받기로 했었는데..... ㅠㅠ
유치원에서 다인이를 데려오고 평상시라면 밖의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을텐데
오늘은 웬일로 밖에서 안놀고 집에 일찍 돌아왔어요..
시내에서 시영주택 퇴거신청 중인 아빠랑 통화를 끝내고 
씽크대에서 손 씻고 있는 다인이를 도와주고 있는데 TV 화면에 자막이!!
그땐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긴급속보였어요.. 강한 지진이 온다는...
물 틀고 손 씻는데 흔들리기 시작!!
평상시 지진이 많았던 곳이라 그런가보다.... 서서 멈추길 기다리는데 이런~  

이건 장난이 아니다!!!!!!!!!!!!!!!!
얼른 물 잠그고 울집에서 젤 안전한 안방 구석진 곳으로 다인이를 데리고 대피...
진도 5강이 왔었어도 식탁위의 펜꽂이만 넘어질 정도로 단단한 암반 위에 있는 우리집이
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대개 30초에서 1분이면 멈추는데, 잦아드는듯 하면 또 크게 흔들리고
이게 몇번씩 또 반복되면서 집안의 물건이 모두 다 떨어지고
부엌의 전자렌지가 떨어지려는걸 일단 밀어넣고 앉아있다
텔레비젼이 떨어지려 하길래 가서 붙잡으려고 했는데
그때까진 물건이 막 떨어져도 잘 참고있다가
다인이가 소리지르면서 울기 시작해서 안아주느라 못갔어요..  
대체 이게 언제 끝나는걸까? 끝나기는 하는걸까?


끝나기는 하네요... 엄청난 광경을 보여주면서요..
밖으로 대피해야할지 집에 있어야할지 고민하다 아빠한테 전화했는데
전화가 연결되네요... 진짜 기적같은 일이었음~
근데 이 정신없는 아빠!! 연구실 걱정된다고 거기 가도 되냐고 해서
당장 집으로 튀어오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집에 오겠다고...
나중에 알았는데 지진 직후 전기가 끊겨서 신호등도 다 나간 상태라
집에 오는데만 4~5시간 넘게 걸렸었다고...
우린 지진 직후에 달려왔기 때문에 30여분만에 집에 도착했지만.. 


다행히 부엌쪽 선반에 있던 유리그릇들은 무사하네요.
저게 떨어졌으면 온집안이 유리범벅이었을텐데 몇개 정도만 깨지고 나머진 무사..
주전자가 떨어져서 바닥은 온통 물천지였지만 ㅜ.ㅜ


서재방이 참혹합니다...
저 멀리 책상쪽에 있던 tv가 문쪽으로 날아왔네요 ㅠ.ㅠ
이방에 있었음 큰일날뻔!!!

지진 직후 현관문 열어놓고 있는데 괜찮으세요? 하는 소리..
이사짐센터직원이 집 아래에서 지진때문에 못올라오고
차안에서 대기하다 박스 가지고 올라오더라는.. 대단~~
그렇잖아도 엉망인 집안에 박스 60개를 갖다놓으니 더 정신없고...


어찌어찌 아빠가 도착해서 식료품 사놔야한다고 해서
세븐일레븐 갔다오고 야마자와 가고... 그새 많은 물건들이 없어졌어요..
아빠가 집에 들어올때 밖에서 유진이랑 유진엄마가 뛰어다니는걸 봤다는데
우리 가족이 차쪽으로 나오는 사이 어디론가 가버린듯..
차안에서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유진이네는 안보이고,
진짜...... 바람 심하게 불고 눈이 어찌나 쏟아지던지
이런게 이 세상의 종말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차타고 남쪽 도로로 나가니 바닥이 이렇게...... 갈라져 있더라는 ㅠ.ㅠ
길 상태가 어떨지 몰라 위험해서 아무래도 집에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집으로...


그 사이 눈은 그쳤네요...... 3월에 눈보라라니....
유진이네도 아령이네도 전화는 연결될 줄 모르고,
동네분들이 여진이 계속되니 초등학교로 대피하는게 좋겠다고 해서
대충 짐 챙겨서 모니와초등학교로....


피난소에서 겨우 유진이네와 지민이네를 만났어요.
두 가족 다 아빠가 출장중이라 엄마랑 애들만 있어서 어찌나 불안해하던지..
전화라도 되면 좋을텐데, 핸드폰을 아이폰으로 미리 바꿨으면
카톡이나 트위터로 한국의 가족들에게 연락할 수 있었을텐데..
입짧은 다인양, 바뀐 환경에 놀라 못먹을까봐 밥솥의 밥과 김까지 챙겨온 엄마..
정말 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냉정하게 버티고 있었다는.


3월인데... 영하의 기온...
난방은 안되고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체육관에서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들어오는 찬 바람..
뼈속까지 시리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이날밤 너무 절실하게 체험했어요.
눈은 계속 간헐적으로 쏟아지고, 기온이 떨어져서 길은 살얼음판인데
추워하는 가족과 유진이네와 지민이네를 위해 그 깜깜한 곳을
아빠는 이불 가지러 몇번이나 왔다갔다 했지요.
전기,수도,가스 없는 추위와 공포와 여진의 하룻밤은 이렇게 시작됐어요.

너무 자주 흔들리고 그때마다 흔들리는 천정의 등, 농구대, 벽..
흔들리는 순간에 들리는 창문의 덜컥덜컥 하는 소리....
정말 잠을 잘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도 정말 대단한 것이... 그 지진이 왔어도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첫날부터 피난소 차려지고, 전등 켜지고, 화장실 쓸 수 있고, 밥도 주더라는!
다행히 새벽 3시쯤 au가 잠시 통화가능한 상태가 되어서 동경에 있는
아빠 친구한테 한국의 가족들에게 연락 좀 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다는..